2008/02/02 05:03

유럽이 통합하게 된 원인(遠因)과 근인(近因). *ITALIA

◎ Europe이 통합하게 된 원인(遠因)과 근인(近因).



원인(遠因)-① : "평화공존단계"(Peaceful Co-Existence) 구축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즉, 그에 따른 열망도 대단하였었다. 즉,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이러한 열망이 세졌던 것이다. 즉, "더이상 전쟁의 참화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말라"는 의도에서 출발한다.

원인(遠因)-② :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 국민들의 "인식들이 변화"했다. 즉, "지도층에서 하위계급에 이르기까지" 그러하였던 것이다. 즉, "민족주의"(국가지상주의)가 그 전에는 팽배하였고, 또한 "중상주의"(重商主義)에 기초한 "보호주의"(保護主義)가 팽배하여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이 초래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 "히틀러 같은 인간"도 그러한 원인들 때문에 나온 것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Ideology'가 아니라 '어떻게 그리고 어떤 식으로 잘 먹고 잘 사는가'라는 점"을 깨달았던 것이다. 즉, "부(富) & 복지"에 바탕한 "상호협력(相互協力) & 상호균등발전(相互均等發展)"이라는 인식을 시작했다. 결국, 이러한 "인식전환"(認識轉換)을 통하여 "유럽의 화합과 단합"을 꽤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인(遠因)-③ : "새로운 형태의 대화관계(Communication Relationship)"가 수립되었다. 즉, 앞서의 "민족주의", "보호주의", "절대주의"(絶對主義) 하에서는 국가간의 소통은 일반적으로 "지도층들간의 대화"에 불과해짐으로서 "밀약"(密約)과 "모략"(謀略) 등이 판쳤다. 허나,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 국민들간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고, 또한 그것이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대화관계"가 생겨남으로서, 서로가 서로를 "아주 잘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원인(遠因)들"과 관련하여, 1985년에 Spinally라는 학자가 쓴 논문은 표현하기를,

"Major Transformation has occurred in the political consciousness of Europe, something completely new in the history." 즉, 해석하자면 "역사상에서 뭔가 완전히 다른 유럽의 '정치적 인식'(ex. 민족주의, 보호주의, 국가지상주의 등)이 '아주 획기적으로' 일어났다."는 의미다.

근인(近因)-① : "경제적인 요인"(Economic Factor), 즉 제1차 세계대전 및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식민지 상실"과 "경제파괴로 인한 경제적 후퇴" 등으로 인하여 EC(European Community) 등을 결성하는 방법으로 등의 경제적 단결과정을 거쳤다.

근인(近因)-② : "정치적인 요인"(Political Factor), 그리고 이들을 포함하는 개념은 "유럽제국의 몰락 & 미국과 소련이라는 New Super Power의 등장"인 것이다. 참고로, 훗날인 1990년대 초반에 "소련"이 망한 원인은…미국 대통령 "레이건"이 실시한 "저유가정책"(底油價政策, 특히 "소련산 기름" 등에 대한…)과 "Star Was Plan 등에 의한 예산낭비 유도"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미국 vs. 소련의 대립"으로 "자유민주주의 vs. 사회주의"라는 구도가 유럽에도 생성되었다. 즉, 이전의 유럽에서의 대결구도인 "의회민주주의 vs. 전제군주제", "Bourgeois vs. Proletariats"라는 형태들이 뒤집어졌다. 근데, 이러한 과정에서 "그 어느 쪽에도 먹히지 않기 위하여" 정치적 통합을 모색하게 되었던 것이다.







◎ 현재 "국가적 조직체들의 통합형태"로는 "Union"(연합), "Federation"(연방), "Confederation"(국가연합), 그리고 "Commonwealth"(組成國 연방) 등이 있다. 근데, 어떻게 Europe은 앞서의 시간에서 언급한 여러 분열요인들을 극복하고, Union을 형성하였던가!

먼저, Union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①"이념"(理念, Ideology), ②"사상"(思想), ③"문화"(文化) 등에 있어서 동질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Europe의 경우는 ①에 있어서는 "자유민주주의 & 자본주의", ②에 있어서는 "'문화적 동질성'(文化的 同質性) 등에 바탕한 그리스-로마 철학 & 기독교 사상", ③에 있어서는 "기독교 문화" & "그리스-로마 문화" 등의 "합당한 조건들"이 있다. 그에 비해서, "두개의 한국들"의 경우, "문화"(文化)에 있어서는 여전히 "동질성"(同質性)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으나, "사상"(思想)과 "이념"(理念)에 있어서는 "괴리감"(乖離感)이 이미 형성되어버린 탓에….



※ 하나의 "사건"(신문이나 뉴스 등에서 보도된…)을 보더라도 그 행간(行間)의 의미만 보지 말고, 좀 더 멀리 보는 훈련을 해 볼 필요가 있다. ※



◎ Europe이 통합하게 된 근인(近因).



경제적인 요인:

① 배경 - 영국수상 Winston Churchill은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서 1946년9월에 "United State Of Europe"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즉, 그는 이러한 방법으로 "전쟁이 없는…사람들이 평화롭게 화합하여 사는 Europe"을 만들자고 하였던 것이다. 이는 기존의 영국의 "대(對)Europe 정책"이 "대륙 내의 국가들에 대한 이간질 정책"이었음을 참고한다면, 정말로 "대단한" 생각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발언의 진정한 배경에는 "소련의 유럽장악을 저지하자"는 것이었다. 여하튼, 독일의 "Adenauer 대통령" 및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과 같은 사람들이 유럽통합의 중요성과 당위성(當爲性)을 강구하였던 것이다.

즉, "지리", "문화", "사회", "종교", "역사", 그리고 "경제" 등의 면들에서의 원인들이 있었기에 "하나로" 가야함을…, 즉 "상호연대성"(相互連帶性)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결과, "경제적 상호협력관계"(經濟的 相互協力關係)에 대하여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또한 더 나아가서, "각 국가들의 경제의 통합"이라는 인식도 작용했다. 즉, "보호무역주의"(保護貿易主義)에 바탕한 "무역장벽"을 "유럽 내에서 만이라도" 철폐하고, 더 나아가서 "서로 협력해야겠다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조성될 수 있었던 데에는 WWII에 의하여 파괴되어지고, 또한 식민지들마저도 그로 인하여 상실해버린 "Europe 경제"를 재건한다는 점에 그 뜻이 있었다.

② "국제적 기구"의 창립 - 1929년부터 야기되었던 "세계경제대공황" 등을 격은 바 있기에, 이러한 상황을 통제할 "장치"의 "필요성"이 요구되어졌다. 이렇게 되자,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 단기 및 중기 자금 대여)와 World Bank([IBRD], 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사회간접자본 등에 대한 투자), [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일반관세무역협정) 등이 생겨나기에 이르렀는데…, 문제는 WWII 이후의 유럽경제의 파탄 등으로 인하여 유럽 여러 나라들이 이런 곳들에서 돈을 빌리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아무튼, 이러한 상황 등은 "[EC](European Community) 등의 탄생과 관련이 있다.

 

출처 : [기타] 동국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강휘 교수님 유럽정치론 강의 내용.